휴남동 서점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불편한 편의점 마냥 가볍게 읽고, 아 사람 사는 세상 이야기이구나
라고 지나갈 만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책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불편한 편의점보다는 가독성이 떨어진다.
불편한 편의점은 쉬운 말, 대사들로 술술 읽어나갔는데
휴남동 서점은 그렇지는 않았다.
아마도 개인적으로는 한 번 더 생각해보게끔 하는
인간에 대한 생각이 꽤 자주 등장하기 때문인 것 같다.
느끼기에 아주 무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날아갈 듯이 가벼워
몇 시간 만에 슉슉 읽어나갈 만한 책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른인 척 살고 있었는데 실은 어른이 아니었더라고요.
엄마 말 한마디에 지금 무지 위축된 상태예요.
보이지도 않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진 기분이 들어요.
문제는, 일어날 순 있겠는데 일어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공감되는 고민에 기대를 가지고 책장을 넘겼지만 해결책은 결국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자, 자기 자신에게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기르자라는 진부한 결론이다.
조금 실망.
(같은 말이라도 조금 더 다르게 표현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작가에 대한 기대)
어쨌거나 꽤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해 나가고 있다고 느끼던 순간에도
부모님의 인정, 특히나 엄마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사람을 휘청이게 한다.
애써 괜찮다 생각해도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하고,
생각에 잠기는 순간 우울감이 몰려온다.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나라고 스스로에게 의문을 가진다.
이런 것을 보면 정신분석학의 통찰력이 괜히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렵고,
한 사람의 인생에 엄마가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알면 좀 인정해주면 안될까요.)
어렸을 때, 엄마의 마음을 속상하게 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던 때가 있었다.
내 스스로가 너무 싫고, 밉고, 그 후의 나는 나를 더이상 진실로 사랑하지 못하게 된 때.
엄마를 붙잡고 한바탕 울고, 죄책감에 몸부림치고 있던 그 때,
엄마가 티비를 보며 깔깔 웃으시는 모습을 봤다.
그 때 생각했다.
아, 엄마의 세상이 무너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건방지게도 아마 나는 엄마의 예쁜 자식이니 나 때문에 엄마는 속상해서
잠도 못자고, 밥도 못먹고 웃지도 못할거야 라고 생각했나보다.
그런데 티비를 보며 웃는 엄마의 모습은
나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다행이다. 엄마는 괜찮구나.
그 후로 아이의 마음이 바닥을 칠 때
엄마는 그것보다 더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더 아래에서 더 슬퍼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한 일도 나는 감당할 수 있고,
너를 받쳐줄 수 있다.
지금은 그것이 엄청 큰 일 같지만
세상에 생각보다 큰 일은 많지 않다는 것을 아는 엄마가 되는 것.
엄마가 웃어서, 지금을 살아갈 수 있다.
물론 엄마는 아팠을 것이다.
잠도 설치고, 생각이 들땐 입맛도 없고.
그래도 웃음을 잃지는 않았다.
내가 이렇게 괴로워도, 엄마는 엄마의 삶을 살고
웃을 수도 있고.
냉정하게 보여도, 그렇기에 나는 엄마에 대한 죄책감을 덜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이것 또한 암묵적으로 엄마가 웃으니까.
살아가고 있구나. 지나가고 있구나.
라고 여길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괜찮다면 다 괜찮게 느껴지는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걸까.
엄마가 안된다면 어딘지 마음이 불편한 것도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아서 일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도 괜찮다.
내 선택으로 엄마는 마음이 불편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그것으로 무너지지는 않는다.
엄마는 나와 대화할 때는 시름에 잠기고, 슬퍼하겠지만
지금은 어디선가 티비를 보며 웃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괜찮다.